변곡점 맞은 주식시장, 증권·운용사 CEO 48인에게 길을 묻다
코스피지수는 1980년 100으로 출발했다. 1989년 1000, 2007년 2000을 넘어섰다. 그리고 지난해 3000선을 돌파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시작해 1000만 주주 시대가 열리며 시장에 개인들의 자금이 들어온 효과였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코스피지수는 시가 총액 증가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990년 1월 초 915였던 코스피지수는 작년 말 2978로 3.2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시가 총액은 96조원에서 2203조원으로 23배나 늘었다.
미국은 달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990년 350에서 작년 말 4766까지 올라갔다. 14배 늘었다. 같은 기간 시총은 2조 달러에서 40조 달러로 늘었다.
‘3.25 대 23’은 한국 주식 시장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숫자로 꼽을 수 있다. 기업 분할과 상장(IPO)은 넘쳐나는데 비해 자사주 매입 소각, 배당 확대 등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1000만 주주 시대, 한국 자본 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자본 시장 최일선에서 증권사와 자산 운용사를 이끌고 있는 최고경영자(CEO) 48인에게 ‘한국 자본 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물었다. 이번 설문은 한국경제신문과 한경비즈니스가 함께 진행했다. 모든 문항은 복수 응답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국 자본 시장은 60~70점”
지금 한국 주식 시장은 변곡점에 서 있다. 한국 자본 시장의 현주소에 대한 한국 증권사·자산 운용사 CEO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글로벌 자본 시장과 비교해 한국 자본 시장의 현재 수준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CEO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3%가 ‘60~70점 미만’이라는 점수를 줬다. ‘50~60점 미만’이라고 응답한 CEO도 25%에 달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생각하는 한국 자본 시장의 발전을 막는 가장 중요한 걸림돌은 무엇일까. ‘자본 시장에 대한 지나친 규제(32명, 66.7%)’를 꼽은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본 시장에 대한 규제는 대부분 투자자 보호라는 취지로 실행된다. CEO들은 이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이를 명분으로 가해지는 각종 규제는 소비자를 위한 상품 출시마저 막는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규제에 이어 ‘투명하지 못한 지배 구조, 지배 주주에 대한 낮은 신뢰도’를 꼽은 응답자도 27명(58.3%)에 달했다. 개인 투자자 1000만 명 시대를 맞아 주식 시장에서 이른바 ‘개미 투자자’로 일컬어지는 소액 주주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지만 상장 기업들의 이와 관련한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게 CEO들의 판단이다.
‘코스피 4000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묻는 질문에도 한국의 증권사·자산 운용사 CEO들의 답은 일맥상통했다. ‘주주 친화 정책의 확대’를 답한 응답자(복수 응답)가 31명(64.6%)으로 가장 많았고 30명(62.5%)이 ‘기업들의 이익 증가’를 강조했다. 기업의 이익 증가는 배당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한국 주식 시장이 앞으로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투자자의 자산, 소비 여력 증식’을 꼽았다. CEO 48인 가운데 35명(72.9%)이 꼽은 답이다. 1000만 명이 주주가 된 시대인 만큼 주식 시장이 자산 증식의 통로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혁신 유망 기업 발굴(41.7%)’과 ‘기업의 자금 조달 통로(39.6%)’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대답도 눈에 띄었다.
이는 ‘2022년 한국 기업이 우선해야 할 것’은 투자일까, 배당일까’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눈여겨볼 것은, 주주 친화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CEO들 가운데 다수가 압도적으로 ‘배당(22.9%)’보다 ‘투자(77.1%)’를 우선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설문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성장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키우는 데 있고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자본 시장이 본연의 역할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개인 투자자 1000만 시대, 기업과 주주의 동상이몽
#1. ‘K팝의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월 31일 정기 주주 총회 직후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3월 29일 종가 기준 7만6000원이던 주가는 3월 31일 주주 총회 당일 8만원대를 넘어서더니 4월 1일 8만5900원에 장을 마감했다. 4월 1일 장중 한때 최고가 9만원에 도달하기도 했다.
SM엔터테인먼트 주주 총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간 SM엔터테인먼트의 주주들은 ‘회사 가치 저평가’의 원인으로 SM엔터테인먼트 지배 구조의 아킬레스건으로 일컬어지는 라이크기획을 지목해 왔다. 라이크기획은 이수만 총괄프로듀서가 지분 100%를 가진 자회사로, SM엔터테인먼트는 1998년부터 라이크기획과 용역 계약을 하고 SM엔터테인먼트 매출액의 6%를 인세로 지급하고 있다. 이에 따라 SM엔터테인먼트의 영업이익이 축소되고 경쟁사들과 비교해 낮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는 주장이다.
이에 주총 전부터 소액 주주들은 SM엔터테인먼트 경영진과 감사 선임을 앞두고 치열한 표 대결을 펼쳤고 결국 소액 주주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2000년 상장 이후 20년간 ‘무배당’으로 일관했던 SM엔터테인먼트가 ‘창사 이후 첫 배당’을 하기로 한 데다 주주 측이 제안한 곽준호 전 KCF테크놀러지스(현 SK넥실리스)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감사로 선임된 것이다. ‘소액 주주’의 승리로 SM엔터테인먼트의 지배 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주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2. 동원산업은 4월 7일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흡수·합병한다는 소식과 함께 액면가 5000원을 1000원으로 분할한다고 공시했다. ‘대주주만 유리한 합병’이라며 소액 주주들의 반발이 쏟아져 나왔다.
백지윤 블래쉬자산운용 대표는 4월 13일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동원산업의 자회사인 스타키스트는 성장성이 매우 높은 회사로, 지금 1조원이 안 되지만 향후 기업 가치는 2조원 이상일 것으로 본다”며 “동원산업의 지배 주주 일가는 고성장하는 자회사를 가진 동원산업의 일반 주주를 내쫓고 이익을 강탈해 본인들의 부를 쌓아 올리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타키스트는 미국에서 참치를 파우치 형태로 판매하면서 매년 두 자릿수로 성장하고 있는 동원산업의 100% 자회사다.
합병 공시 이후 첫 거래일인 4월 11일 동원산업의 주가는 4월 8일 종가 기준 26만5000원에서 4월 11일 종가 기준 22만7500원으로 14.15% 급락했다. 이후 주가가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합병 발표 전과 비교해 10% 이상 하락한 상태다.
소액 주주의 승리가 주가 상승을 견인한 SM엔터테인먼트의 사례와 회사의 흡수·합병 결정이 주주 이익에 반한다는 평가 속에 주가가 하락한 동원산업의 사례는 한국 자본 시장의 달라진 풍경을 보여준다. 2020년 시작된 동학개미운동은 ‘개인 투자자 1000만 명’ 시대를 여는 예고편이었다. 글로벌 증시가 얼어붙으면서 동학개미들의 화력은 예전만 못하지만 한국 자본 시장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이해관계인으로서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1000만 주주 시대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주주 숫자의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주식에 대해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를 동반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인식 변화는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시장 참여자 사이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설문에 참여한 48인의 자산 운용사와 증권사 대표들은 한국 자본 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기업과 소액 주주, 금융 당국 등 자본 시장 참가자 사이의 신뢰도가 낮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29명(60.4%)이 ‘지배 주주 위주의 이익 추구’를 꼽았다. ‘낮은 배당 성향과 기업의 허술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지적하는 의견도 각각 35.4%(17명)로 응답률이 높았다.
한국 기업의 배당 성향이 해외에 비해 낮은 것이 주요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이 72.9%로 압도적이었고 ‘아니다’는 응답은 27.1%에 불과했다. 한국 기업의 배당 성향이 유독 낮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대주주가 배당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회 분위기’를 꼽은 응답자가 25명(52.1%), ‘높은 배당세’를 꼽는 의견도 45.8%(22명)에 달했다.
“투자자들의 외면 받는 기업은 매력도 줄어”
지배 주주를 우선으로 한 이익 추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충돌 사례가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쪼개기 상장’ 논란과 카카오페이의 ‘스톡옵션 먹튀’ 논란이다.
4월 19일 열린 자본 시장연구원의 ‘주식 시장 공정성 제고를 위한 과제 : 물적 분할과 스톡옵션을 중심으로’ 온라인 정책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한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물적 분할 논란을 ‘팥빵과 팥(앙꼬)’에 비유했다. LG화학이라는 팥빵을 구매한 소액 주주들이 기대한 것은 배터리 관련 사업의 높은 성장성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이 LG화학의 ‘앙꼬’란 얘기다. 그런데 LG화학이라는 아버지가 이 ‘앙꼬’를 다 떼어내겠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앙꼬를 떼어내기로 결정한 아버지(LG화학)는 언제든 앙꼬를 나눠 먹을 수 있다는 데 있다. 팥이 가득한 팥빵을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앙꼬 없는 팥빵’만 들고 있게 된 소액 주주들로서는 원성이 자자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날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물적 분할’은 기업 지배 구조 개편 효과에 따라 주가와 관련해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물적 분할 후 모회사와 자회사를 동시에 상장했을 때 모자회사의 기업 가치가 모두 하락하는 결과를 나타냈다. 한국식 기업 지배 구조에서 나타나는 ‘모자회사 동시 상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번 설문에서 역시 마찬가지의 답변이 나왔다. 최근 물적 분할 후 재상장 논란이 문제인 이유와 관련한 질문에 31명(64.8%)이 ‘더블카운팅으로 인한 모회사의 주주 가치 훼손’을 꼽았다. ‘자본 시장에 대한 불신 확산’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14명(29.2%)이었다.
물적 분할 후 재상장과 관련한 법적 규제 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25명(52.1%)이 ‘모회사 주주에 주식 우선 배정 의무화’를 꼽았고 ‘주식 매수 청구권을 부여해 주주들에게 탈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한 의견도 22명(45.8%)이나 됐다.
카카오페이 ‘스톡옵션 먹튀’ 논란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최근 카카오 경영진의 스톡옵션 매각 문제가 불거진 후 상장 후 최소 6개월간 스톡옵션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방안이 적절한지를 묻는 의견에 87.5%의 CEO들이 ‘적절한 주주 보호 장치’라는 의견을 밝혔다. 상장 직후 경영진의 무리한 스톡옵션 매각을 막기 위해 어떤 수준의 제재가 적절한지 묻는 질문에는 ‘의무 보유 기간 법제화’를 꼽은 응답이 가장 많았고(29명, 60.4%), ‘사내 허가제 도입 및 사전 공시 의무화(12명, 25%)’, ‘한국거래소의 권고 수준의 가이드라인 제시(7명, 14.8%)’가 뒤를 이었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온라인 세미나에서 2015년부터 2021년 사이 한국 주식 시장에 상장된 기업들 가운데 임직원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한 기업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전반적으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이 스톡옵션을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문제는 카카오페이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에서 회사 임원이 상장 후 조기에 스톡옵션을 행사해 매도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한 이수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 과장은 이를 ‘배’에 비유해 설명했다. 성장성이 높아 보이는 멋진 배에 올라탔는데 주주들이 올라타자마자 배 주인이 소형 보트를 타고 배를 탈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였다.
주주 친화 정책을 내걸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한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서도 나타난다. 설문에 참여한 증권사 자산 운용 CEO들은 ‘한국 기업이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적극적이지 않다(87.2%)’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와 관련해 65.2%(30명)가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기업이 노력한다는 시그널’이라고 답했고 ‘주당순이익(EPS) 상향 효과’를 언급한 응답자도 41.3%(19명)에 달했다. 물론 ‘소각 대신 투자를 통한 성장이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상향시킬 수 있어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은 필요없다’는 응답도 15.2%(7명) 있었다.
이수영 과장은 “개인 투자자들이 언제 어느 곳이든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는 기업은 그 매력 또한 매우 빠른 속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자본 시장의 한 참여자이자 기업의 이해관계인으로서 소액 주주들을 존중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본 시장 역동성 막는 과도한 규제
2019년 라임 사태와 옵티머스 사태 이후 자본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무너진 신뢰도 한국 자본 시장이 겪고 있는 또 다른 성장통이다. 이후 금융 당국은 서둘러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나섰지만 이는 오히려 과도한 규제로 이어지며 한국 자본 시장의 역동성을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중이다.
한국 공모펀드 시장이 성장을 멈춘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한국 증권사·자산 운용사 CEO들은 ‘펀드업을 둘러싼 각종 규제(23명, 47.9%)’와 ‘경쟁 상품 대비 낮은 수준의 펀드 수익률(23명, 47.9%)’을 가장 먼저 지목했다.
투자자들에게 수익률이라는 과실을 안겨주지 못하는 금융 상품은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지만 복잡한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 자산 운용사 CEO는 “2021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이후 펀드 상품 하나를 판매하는 데도 40~50분씩 걸리는 데다 절차도 매우 복잡해졌다”며 “특히 판매사의 책임이 강화되면서 구조가 조금 복잡한 상품은 출시가 임박한 상태에서 개발이 중단되거나 전면 수정하는 상품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자산 운용 시장의 발전을 위해 보완해야 할 제도 개선책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강화된 투자자 보호 조항 완화’와 ‘펀드 장기 투자 시 세제 혜택 강화’를 언급한 이들이 다수였다. 각각 30명씩(62.5%) 응답했다. ‘공모와 사모펀드를 분리하지 않은 획일적인 규제 완화’를 언급한 응답자도 18명(33.3%) 있었다.
금융 사고가 일어나면 당국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론도 그렇게 움직인다. 하지만 이 강화된 규제가 몇 년 지나고 나면 시장을 침체시키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주식 시장과 자본 시장도 덩달아 출렁이게 된다.
설문에 응한 한 CEO는 “결국 핵심은 규제와 혁신의 밸런스”라고 강조했다. CEO들은 현재 한국의 자본 시장은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로 선진 금융 시장 대비 시장 참여자의 혁신과 창의가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한다. 금융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금융회사에 과도한 책임을 전가하고 징벌적 징계 조치를 내리는 경우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CEO는 ‘금융 당국의 관치성 규제’를 꼬집었다. 회계 이슈나 물적 분할 등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지면 감독 당국이 사후약방문 형식의 제재에만 집중하는 기조에 대한 우려다. 사고 발생 후 규제가 강화되는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일관성 없는 규제’가 시장의 불안을 더 키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자본 시장의 문제점은 “신뢰의 상실”
설문의 첫 문항은 ‘한국 자본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한 주관식 질문이었다. ‘한국 자본 시장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 한국 자본 시장의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 정확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주관식으로 주어진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자산 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느끼는 자본 시장의 문제점은 분명했다. ‘시장 참여자 간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점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한 CEO는 “한국 주식 시장은 미국과 비교해 장기 추세적 상승을 보이지 않으므로 위험하다는 광범위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업은 배당을 포함한 주주 환원율을 대폭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해외 은행들의 배당률이 90%인 것과 비교해 한국 은행들은 30% 선이라는 점을 들었다. 또 과거와 비교해 상당 부분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중견·중소기업 오너들의 전횡과 내부 감시 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자본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자본 시장은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시장이다. 문제는 자본 시장 내 기업과 주주 간의 ‘정보 비대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자본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 기업 정보 공개가 강조되는 이유다.
상당수의 CEO들이 미국 등 다른 자본 시장에 비해 기업들의 경영 실적과 가이던스에 대한 정보 제공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화되고 미공개 정보나 내부 거래, 각종 루머가 난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펀더멘털이 자본 시장에서 적절히 평가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기업의 부실한 지배 구조와 주주 환원에 대한 인식 부족을 언급하는 의견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특히 최근 주식 시장을 뜨겁게 달군 물적 분할 논란 등과 관련해 ‘소액 주주의 이익 보호 및 투자자 보호’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설문에 참여한 한 CEO는 “기업 성장을 돕는 친기업 정책을 통해 상장 기업의 성장성·수익성이 확대되고 배당 확대로 연결돼 투자자들이 장기 투자가 가능한 구조로 변화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자본 시장의 선진화, 개인들의 역할은?
최근 2~3년간 한국 주식 시장은 개인 투자자들의 직접 투자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으로 손쉽게 금융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이 증가함에 따라 20~30대 젊은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 대거 진입했다. 2019년 기준 한국의 20~30대 전체 인구 중 주식 투자자는 각각 5%, 15%에 불과했지만 2020년 이 비율이 각각 15%, 25%로 크게 높아졌다.
이는 주식 시장 투자자의 저변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가 주식 직접 투자를 통해 수익을 거두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2021년 자본시장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3월 이후 주식 시장에 진입한 신규 투자자 중 60%는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설문 응답에서도 나타나듯이 자본 시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투자자의 자산 증식’이다. 이를 감안할 때 주식 시장에 참여한 개인 투자자들의 저조한 성과가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1000만 명에 달하는 개인 투자자들은 이미 한국의 자본 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는 데 시장 참여자로서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고 그 역할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투자자 1000만 명 시대’에 대한 기대감은 낮았다.
28명(58.3%)의 CEO들이 ‘자본 시장에 미미한 개선은 KCMI 자본시장연구원 있겠지만 한국 자본 시장의 문제점이 해결되는 등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표했다. 반면 ‘바람직한 한국식 주주 자본주의가 시작될 것’이라며 낙관적인 의견을 표한 이들은 18명(37.5%)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 1000만 명을 넘어선 개인 투자자들이 한국 자본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에 따라 한국 자본 시장 역시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갈림길에 서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CEO들 역시 개인 투자자들의 ‘단타 위주’의 투자 문화와 관련해 우려를 나타낸 이유다. 실제 자본시장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약 8일에 불과하다.
한국 증권사들과 자산 운용사를 이끄는 수장들은 ‘주식 투자를 대박의 기회로 바라보는 분위기(34명, 70.8%)’를 그 주범으로 꼽았다. 최근 요동치는 글로벌 시장의 영향으로 ‘예상치 못한 잦은 악재 출현으로 장기 투자에 대한 신뢰도 부족(13명, 27.1%)’을 원인으로 언급한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이와 같은 투자 풍토는 더욱 불확실성이 높아진 글로벌 금융 시장 상황과 장기 투자를 가로막는 한국 주식 시장의 불합리한 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나타난 결과인 셈이다. 한국 주식의 양도세가 해외 주식 과세보다 크다는 점에서 해외 투자 가속화로 한국 주식 시장의 저평가가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다.
이와 함께 개인 투자자는 물론 자산 운용사의 상품 개발 과정에서 시장의 단기 전망에 의존하는 투자 풍토, 이를 부추기는 언론 기사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날카로웠다. 투자자들에게 좋은 상품이 아니라 ‘인기 있는 상품’을 중심으로 금융 상품이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식 투자의 편의성이 높아지고 투자를 위해 고려해야 할 금융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 유입되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한국 주식 시장처럼 개인 투자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는 만큼 개인 투자자의 금융 교육을 강화하고 충분히 전문성을 갖춘 자문 서비스에 대한 활용도를 높이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
최근 증권 거래시장은 다양한 거래시장의 등장으로 인해 하나의 증권이 여러 시장에서 동시에 거래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의미의 정규거래소 이외에 다양한 형태의 대체거래시스템이 유동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시장으로의 분할이 가속화될수록 시장의 안정성과 시장 감독의 효율성을 저해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거래가 다수의 시장으로 분산되면 호가 및 매매 관련 정보도 자연스럽게 해당 거래시장으로 분산된다. 따라서 분할된 시장을 효율적으로 연계하고 정보를 통합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도리어 투자자의 효용은 저하되고 시장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
2013년 8월 개정된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국내 증권시장 또한 거래시장의 분할이라는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 거래시장의 다양화가 추진되고 있다.
이에 본 보고서는 주요국의 시장분할 양상과 관련 규제방안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 향후 국내 시장분할양상을 예측하고 바람직한 대응방안들을 마련하는데 기반이 되고자 한다. 특히 호가정보를 공개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즉 공개시장인지, 비공개시장인지에 따라 시장분할의 효과와 규제방안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미국과 유럽의 거래시장은 현재 분할이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어 있다. NYSE Euronext, NASDAQ OMX, London Stock Exchange와 같은 전통적 정규거래소의 시장점유율은 감소한 대신 다양한 대안적 거래소들이 시장에 진입하여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안정적 성장을 이룬 BATS, DirectEdge, Chi-X Europe 등 대표적 대체거래소들은 양적 성장을 위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1차적 발전단계에서 진일보하여 정규거래소로의 전환을 통해 증권 상장 등으로 업무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증권시장 분할의 다른 한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비공개주문시장의 양적 성장이다. 이에 따라 시장의 안정성과 가격발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과거 비공개주문시장에 대규모투자자나 전문투자자들이 집중되어 있었으나 최근 Internalization 등 retail market maker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비공개주문시장에서의 비정보 투자자(uninformed trader) 보호에 대한 필요성도 논의되고 있다.
한편, 일본과 호주는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에 비해 시장분할의 정도가 낮은 편이다. 국가별로 1~2개의 대체거래소가 설립되어 있으며 여전히 정규거래소를 통한 거래비중이 높다. 전통적으로 단일의 정규거래소가 존재해왔던 거래시장의 경우 대체거래소가 도입된 이후에도 정규거래소의 확고한 입지로 인해 시장점유율을 빠른 시간에 높여나가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III. 시장분할에 따른 환경변화와 영향평가
1. 차별화된 경쟁 요소들의 등장
복수의 거래시장들이 출현하면 한정된 유동성을 놓고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매매와 관련된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복수의 거래시장들은 유동성이 최대한 많이 공급되고 유동성 수취가 최대한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장접근성의 편의를 극대화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시장직접접속 및 동역서비스 등과 같이 고빈도매매자들을 위한 서비스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수수료체계도 유동성 공급자와 유동성 수취자를 구분하여 개별 투자자들의 인센티브에 부합되게 책정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Direct Edge사의 maker-taker 수수료체계이다. 시장분할에 따른 경쟁으로 보다 첨단화된 기술을 요하게 되고 금융IT에 대한 수요증대로 사업이 후방으로 확대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2. 시장 안정성과 투명성에의 영향
대체거래시스템의 등장으로 시장이 분할될 경우 정보효율성, 시장안정성과 감독효율성의 저하를 불러올 수 있고 특히 다크풀의 확산으로 인해 시장의 정보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자주 등장한다. 유동성이 여러 거래시장으로 분산되어 효과적으로 연계되지 않는다면 거래상대방을 탐색하는 비용이 증가하여 결과적으로 투자자 손해로 귀결될 수 있다. 다크풀 자체는 기관투자자들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시장에 충격을 최소화시키는 순기능이
있지만 지나친 확산은 시장 전체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다양한 거래시장으로 투자자의 선택 폭과 시장접근성은 확대되었지만 공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불공정거래에 연루되거나 차별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고 분할된 시장구조 하에서는 특정 시장의 문제가 다른 시장으로 급격히 확산되는 것을 일관성 있게 사전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후적으로도 원인파악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시장은 고도로 복잡해지는 데 비해 시장감독기능이 따라가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고비용 구조로 인해 궁극적으로 투자자에게 비용이 귀착될 수 있다.
3. 시장 영향평가 문헌조사
시장분할 현상이 시장의 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실증연구들은 상반된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데이터들의 사용, 시장분할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측정 방법상의 문제, 시장의 질을 측정하는 서로 다른 기준의 사용 등에 기인할 수 있다. 시장분할에 따른 영향평가를 실증분석하기 이전에 변수들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기준을 마련해야 상호 비교분석이 가능해진다. 또한 거래비용의 차이는 단지 해당 종목이 속해있는 거래시장의 분할 특성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종목의 시가총액 크기와 같은 고유의 특성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고유특성을 제어한 후에 비교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시장분할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통합의 정도를 높여 시장분할의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공개시장과 비공개시장에 각각 특화된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공개시장의 경우 투자자에게 최선의 결과가 보장되도록 하기 위한 최선집행원칙, 거래정보에 대한 무차별적 접근권, 정보통합을 위한 통합시세시스템 구축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비공개주문시장의 경우 명확한 정보공개 범주와 기준을 마련하여 시장의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 최선집행원칙 도입
각국의 최선집행원칙이 표면상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근본적인 목적이 소비자 보호, 특히 소매투자자의 보호에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시장분할로 인해 투자결정이 복잡해지면서 소매투자자들은 정보에서 소외되어 갈수록 자신을 보호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고, 이들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은 증가한다. 최선집행원칙은 투자결정을 위한 다양한 요인들을 비교하기 위한 준거기준을 제시하여 투자자에게 ‘무엇이 최선의 체결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국가에 무관하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요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최선집행원칙에 범국가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각국은 단일 규제 도입 가능성, 시장분산의 정도, 시장분산의 형태 등 여러 가지 시장환경 요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최선집행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최선집행기준을 최우선 호가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최선집행에 대한 1차적 책임은 브로커/딜러에게 부여되며, 브로커/딜러의 주문을 받은 거래시장이 주문보호규정(Order Protection Rule: 이하 OPR)에 따라 보다 우월한 조건의 거래시장으로 주문을 회송해야할 의무를 진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은 구체적인 단일 기준을 강제하지 않고 증권사가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고객에게 최선의 결과가 도출될 수 있는 최선집행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호주는 보다 직접적으로 도매투자자와 소매투자자로 구분하여 소매투자자 주문은 수수료와 세금을 제외한 체결가격을 기준으로 최선집행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였다. 소매투자자 거래의 경우 총대가(Total consideration)를 최대화할 수 있는 거래를 최선의 체결로 정의하였다. 도매투자자들의 경우 가격, 거래비용 이외에 체결가능성, 체결속도, 거래비용 등 관련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선체결 방안을 모색한다.
2. 통합시세분배 시스템 구축
거래정보를 통합하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공인 통합시세시스템을 지정하고 이를 통해 의무적으로 정보를 통합·분배하도록 하는 방법이며 두 번째는 시장 자율에 따라 시세서비스 업체에 의해 공개되도록 하는 방안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이 거래시장 간에 의무적으로 주문을 회송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 주문회송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대표성 있고 신뢰성 있는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공인 통합시세시스템을 설립하여 통합시세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유럽이나 호주와 같이 주문회송에 대한 강제조항이 없는 시장은 증권사의 자체적 판단에 의하여 거래시장을 선택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1970년대에 전국적 시장시스템(National Market System: 이하 NMS)을 설립하려는 계획 하에, 중앙 통합시세시스템을 설립하여 통신 및 데이터 처리 기능을 통해 미국 내 존재하는 모든 시장을 연계하려는 계획을 시행하였다. 1970년대 중반에 NYSE 상장주식의 체결정보 및 호가정보를 통합하는 CTA/CQ Plan을 도입하였으며 1990년 초에는 Nasdaq 상장 주식 통합을 위한 UTP SIP Plan을 실시하였다. 캐나다는 또한 미국과 같이 공인 통합정보제공자를 통해 통합시세를 제공하고 있다. TMX IP는 각 marketplace로부터 받은 정보를 가공하여 분배하고 있다. 단, TMX IP의 상품은 데이터 사용에 따른 라이센스 비용은 포함되어있지 않으며 분배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가공비용만을 징수한다. 이러한 pass-through 방식은 미국의 공인 통합시세시스템 운영 방식과 차이를 보인다.
유럽의 시장통합 규정인 MiFID는 미국과 같은 공인 통합시스템을 갖추도록 요구하고 있지 않으며 시장 자율에 따라 시세가 공급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MiFID 시행 이후 새롭게 등장한 많은 거래시장들이 다양한 형태의 통일되지 않은 거래 자료를 제각기 생성해내어 실질적인 시장간 통합을 어렵게 하였다. 이에 유럽은 MiFID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항을 담은 MiFID II 도입을 추진 중에 있다.
일본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공인 통합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 공인 통합시세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우선 실질적인 필요성이 낮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체 거래대금의 95%가 도쿄증권거래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통합시세 구축과 운용에 큰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구축 필요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단, 일본증권업협회(Japan Securities Dealers Association: 이하 JSDA)가 운영하고 있는 공표시스템이 존재하는데, 이는 실시간 거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설거래시스템(Proprietary Trading System: 이하 PTS)가 시장에 정보를 제공할 수단을 마련해주는 목적 하에 운영되고 있다.
3. 다크풀 관련 규제 도입
최근 미국, 유럽을 포함한 상당수의 주식시장에서 다크풀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Tabb Group에 의하면 현재 미국 주식시장에서 다크풀이 거래량의 35%이상을 차지한다. 장외시장이라 불린 초기의 다크풀이 효율적 대량매매를 원하는 기관투자가들을 위한 거래시스템이었던 반면 현재의 다크풀은 헤지펀드, 뮤추얼펀드, 고빈도매매자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시장참가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다크풀의 종류는 크게 준거가격모델, 협상모델, 내부화모델로 구분할 수 있다. 준거가격시스템의 체결가격은 릿풀에서 발견된 호가가격 또는 체결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협상시스템에서는 거래 전 협상을 통해 거래 조건이 결정된다. 내부화풀은 딜러시장의 한 형태로 모든 거래에 브로커딜러라 불리는 시장조성자가 거래상대방이 되는 특징을 가진다.
다크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각국의 규제기관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다크풀 규제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해오고 있다. 주요국 중 캐나다는 2012년 10월 다크풀에 대한 규율의 변화가 포함된 UMIR을 시행하기 시작했고 호주는 새로 개정된 MIR을 2013년 말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유럽은 2007년 시행된 MiFID의 개정안을 2011년 발의하고 개정안이 통과되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반면 다크풀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는 아직까지 다크풀에 대한 규제적 변화 없이 그에 대한 논의만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V. 국내 증권시장 제도 및 규제체계에 대한 시사점
2013년 8월 드디어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다자간매매체결회사 설립이 허용되고 거래소 허가제가 도입되어 국내 시장의 분할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다자간매매체결회사의 무분별한 설립을 방지하기 위하여 인가 및 등록요건, 최저자기자본 요건 또는 주식소유 제한 등의 규정을 마련하였다. 다자간매매체결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금융위원회로부터 관련업무에 대한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아야 하며, 200억의 최저자기자본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주식소유의 경우 발행주식 총 수의 15%를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하여 소유권이 분산되도록 하였다.또한 다자간매매체결회사의 거래방식 중 경쟁매매 방식에 의한 거래는 증권시장 전체 평균거래량의 5%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여 매매체결시장에서 대체투자시스템의 규모를 제한하였다. 5%를 초과한 다자간매매체결회사가 위법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거래소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러나 비공개거래시장은 공개시장과 달리 성장에 실질적인 제한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경쟁매매에 비해 성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업자에게 최선집행의무를 부과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동일상품에 대해서는 어느 시장에서 거래하든지 투자자에게 가장 유리한 가격으로 거래가 체결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자본시장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최선집행기준은 금융투자업자에게 집행 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을 명시할 뿐, 무엇이 최선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는 않다. 이는 유럽이나 일본과 같이 금융투자업자가 자율적인 기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내 매매시장에서는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고도의 시장분할이 일어날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미국은 OPR이나 정보에 대한 비차별적 접근 규정(Access Rule: 이하 AR)과 같은 법제적 수단을 통해 시장의 가상적 통합정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유럽은 미국과 달리 OPR이나 중앙 집중적 공인 호가 및 거래자료 통합시스템 없이도 거래시장 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장분할과 가상적 통합을 이루었다. 그러나 국내 시장은 OPR이나 AR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경쟁을 통한 시장통합 또한 달성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이렇게 경쟁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시장의 실질적 통합이 담보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시장의 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향후 국내 거래시장이 경쟁을 통한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보완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최선집행원칙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체결결과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정규거래소와 다자간매매체결회사로 분산된 거래관련 정보를 통합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비경쟁매매 관련 정보에 대한 공개 범위와 공개 시점, 비경쟁매매를 통해 거래가 허용되는 주문의 거래 단위 등 비경쟁매매와 관련된 구체적 규정의 마련도 필요할 것이다.
여의도 한국거래소,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뉴욕 금융박물관에는 황소와 곰상이 있다. 이 밖에도 뉴욕 맨하탄 월가(Wall street)와 홍콩 증권거래소에는 황소상이 있다. 증권과 관련된 곳에 황소와 곰이 있는 이유는 주식시장 용어와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가장 높았던 때에 비해서 20%이상 떨어지게 되면 ‘베어마켓(Bear market)’에 진입했다고 하는데, 베어마켓은 주가가 떨어지는 하락장, 약세장을 뜻한다. 반대로 주가가 상승장세 일 때는 ‘불마켓(Bull market)’이라 한다. 많은 동물 중에 하필 곰이 주식시장 하락세를 의미하게 된 이유는 움직임이 둔한 곰의 이미지처럼 거래가 부진한 시장이라고 해서 생겼다는 말도 있고, 싸울 때 상대를 찍어 내리는 곰의 모습을 본 따 생겼다는 말도 있다. 또 예전 서양에서 성행했던 곰 가죽 시장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당시 곰가죽을 팔던 거래상 중 일부가 가죽의 가격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사냥한 곰이 없는 상태에서 미리 가죽을 예약 판매했다. 이것은 일종의 공매도(空賣渡)라 할 수 있는데, '없는 것을 판다'는 뜻으로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란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즉, 미리 곰가죽을 예약판매하고 시중에서 가격이 떨어지기를 바란 거래상들의 모습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베어마켓’과 상반되는 ‘불마켓’에서 불(bull)은 황소를 뜻한다. 황소의 두 뿔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그 뿔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는데, 사람들은 주식시장이 황소 뿔처럼 위로 솟아오르는 상승장을 기대하면서 불마켓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한국증권거래소 개소식(1963) 제3회 증권의 날 기념식(1971) 여의도 증권시장(1984)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가 출범하면서 우리나라의 현대적인 주식시장의 역사가 시작됐다. 물론 그 전에 주식과 관련된 거래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거래소시장은 「조선취인소령」에 의해 1932년 1월 설립된 주식회사 조선취인소(朝鮮取引所)였다. 「조선취인소령」에는 유가증권의 거래방법, 시장시세 결정방법, 허위매매 금지 등의 사항이 규정되어 있었다. 조선취인소가 우리나라 최초의 거래소시장이지만, 일제강점기의 주식자본은 거의 일본인이 독점하였기 때문에 이를 우리나라 공식적인 주식의 유통이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1951년 부산피란 당시 4개의 주식회사가 있었는데, 이들의 거래대상도 농지개혁의 보상으로 교부된 지가증권과 전시 재정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발행된 건국국채를 매매하는 데 그쳤다.
전후복구와 경제부흥을 위한 투자재원 조달을 위해 1953년 11월 설립된 대한증권업협회에서 주식시장의 개설을 추진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증권거래소가 생기게 되었다. 당시 윤인상 재무부차관을 중심으로 구성된 설립준비위원회는 1956년 2월 11일 서울 명동에 대한증권거래소를 설립하였고, 한 달 후인 3월에 공식 출범하였다. 조흥은행, 저축은행, 상업은행, 흥업은행 등 은행 4곳과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 등 6개 일반기업, 대한증권거래소, 한국연합증권금융 등 12개 종목이 이때 상장했다. 시가총액은 150억 원 수준이었다. 현재 전산 처리되고 있는 증권매매 방식이 당시에는 증권사를 대신해 나온 직원이 거래 의사가 있는지를 묻고, 상대방이 의사가 있을 경우 수량과 가격을 손과 소리 등으로 표시해 거래를 체결하는 방식이었다. 이들 주식의 대부분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어 일반 투자자들의 주식 거래는 미미했으며, 개장 첫해 주식거래 실적은 3억 9,000만 원에 불과했다.
[대한뉴스 제77호] 대한증권 거래소 개소(1956)
1962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면서 우선 투자재원의 조달책으로 주식시장을 통한 내자동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1962년 1월 처음으로 「증권거래법」을 제정하고, 이 법에 따라 대한증권거래소가 1962년 4월 개소되었다. 그러나 개소 한 달 후 주식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고 여기에 거물급 투기 세력의 책동이 곁들여지면서 주가폭등과 과열양상이 발생했다. 그러다 월말에 결제하기로 약속한 매수자가 결제를 못하면서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증권거래소와 증권금용회사는 빚더미 속에 빠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자살 하는 일반투자자들이 발생하는 등 큰 파장이 일었는데 이것이 1962년 일어난 ‘5월 주식파동’이다. 이 일로 주식시장은 한동안 침체되었고 1967년의 주식거래량은 1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이 일을 계기로 1963년 5월 증권거래소를 주식회사 형태에서 공영제로 변경하여 주식거래의 공정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이 유통과 발행 양쪽에서 현대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72년 12월 「기업공개촉진법」이 제정된 이후였다. 기업의 공개를 촉진하여 기업의 원활한 자본조달과 재무구조의 개선을 도모하고, 국민의 기업참여를 조성하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기업공개촉진법」 에 따라 상장사도 늘어났으며, 근대적 주식시장의 육성에 크게 기여했다. 1981년 3월 증권협회가 주도 하에 증권전산업무개발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주식 전산화 단계에 진입하였다. 주식전산화는 주식유통시장의 기본 업무를 표준화하고 주식분석기법의 발전과 투자자의 투자기법을 개선하였다. 이렇게 주식전산화 단계에 진입하면서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1983년 1월 4일 시가총액방식의 종합주가지수 제도가 도입되면서 100포인트로 시작한 코스피 지수는 경제성장이 고도화되던 1980년대 후반에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1987년 500포인트를 돌파했으며, 1989년 3월 1,003.31포인트가 되어 1,000포인트 시대를 열게 됐다. 1990년대 우리나라 경제의 고도화와 발맞춰 주식시장도 질적인 성장을 이어갔는데, 1992년 외국인의 국내증시 직접투자가 허용되면서 본격적인 개방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96년 코스닥 시장이 정식 설립됐으며, 선물시장이 연이어 개설되면서 증시의 선진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97년 IMF사태를 맞으면서 잠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1998년 5월 25일부터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은 외국인에게 전면 개방되면서 일반 상장법인 및 KOSDAQ 등록법인에 대한 전체 및 1인당 외국인 투자한도가 폐지되었다. 외국인 보유비중은 2016년 31.9%까지 늘었다.
주식시장 개방 추진방안(1991)
2000년대 들어서 주식시장은 제 모습을 갖춰 나갔는데, 2002년 1월 28일 개별주식옵션시장 개설을 시작으로 환매조건부 채권매매(REPO)시장,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등이 모두 문을 열었다. 2005년 1월 27일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창립됐으며, 같은 해 11월과 12월 스타지수선물시장, 주식워런트증권시장이 개설됐다. 2007년 7월 2,000포인트를 돌파하는 저력을 뽐내기도 했으나, 2008년 ‘리먼 사태’로 국내 주식시장은 큰 고통을 겪었다. 투자은행(IB)인 리먼 브라더스가 9월 15일 파산하면서 전 세계의 기관과 개인들로부터 차입한 금액을 갚지 못했는데, 이로서 동반 부실이라는 도미노 현상을 몰고 왔다. 이후 시장이 안정을 되찾은 2009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현재의 한국거래소로 이름을 변경했다.
2009년 9월 FTSE(Financial Times Stock Exchange index)선진지수에 편입되면서 우리의 주식시장은 선진시장 반열에 올라섰다. FTSE선진지수는 영국의 경제지인 파이낸셜타임스와 런던증권거래소가 공동으로 발표하는 지수로, 우리나라가 FTSE선진지수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주식의 수준이 신흥국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 금융의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신뢰도가 높아지면 외국투자자들의 자금수급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의 주식시장으로서는 좋은 소식이었다.
우리의 주식시장 상장기업수는 1973년 100개, 1997년 1,000개를 넘어섰으며, 2016년 총 2,000개의 상장사가 주식시장에서 거래 중이다. 시가총액의 경우 1965년 150억 원에서 2016년 1월말 기준으로 1,207조 4,58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세계 13위 수준이다. 거래대금은 개장 초기 3,100만 원에 불과했지만, 2016년 약 4조7,700억 원대까지 늘었다. 일평균 거래량 역시 14만 3,000주에서 3억 6,507만 주까지 껑충 뛰었다. 이 수치는 짧은 역사를 가진 우리의 주식시장이지만, 빠른 성장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주식시장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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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상장과 유상증자 감소로 주식시장의 본원적 기능인 기업자금조달이 위축되고 있다.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신성장산업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주식시장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주식시장은 자금의 수요자인 기업과 자금의 공급자인 개인, 기관과 같은 주식투자자를 연결시키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기업은 주식시장에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주식투자자는 투자한 기업의 성과에 따라 배당을 받거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감소하고 자사주 매입이 증가하면서 자금조달이 위축되고 있으며 국내 개인 및 기관투자가들의 참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특히 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변화로 공시비용이 증가하고 주주권리가 확대되면서 주식발행에 따른 기업의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날로 위축되고 있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자금조달 기능과 그 원인을 분석하고 주식시장 본래 기능을 회복,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먼저 주식시장의 역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한다. 주식시장은 기업의 부족한 자금을 공급하는 경로이다. 기업은 필요한 자금을 작은 단위의 증권으로 나누어 발행하고 이 증권을 잉여자금을 가진 경제주체에게 판매하여 자금을 조달한다. 소유권을 분산시키는 것도 주식시장의 역할중 하나다. 주식발행을 통해 기업의 소유권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에게 이전할 수 있다.
기업이 대형화되면서 소유권 분산이 주식시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소유권이 분산되고 경영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전문경영인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규유망사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역할을 한다. 코스닥시장은 거래소에 상장하기 어려운 유망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등이 발행한 주식에 대해 환금성 기회와 공모증자의 기회를 제공하여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금조달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다 투자자의 재산을 형성한다. 주식시장은 투자자에게 금융자산 운용을 위한 투자시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익성과 위험도가 다양한 기업이 발행한 주식에 투자하여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의 우리나라 주식시장 움직임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식시장 본연의 기능들이 상당히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자금조달 추이를 보자.
실물경제규모에 대비한 주식시장의 자금 조달 규모(신규상장+유상증자)를 국가별로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자금조달기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3년을 기준으로 할 때 주식시장의 자금 조달액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홍콩으로 17.3%였고 다음은 영국이 1.7%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0.1%로 GDP 수준이 비슷한 멕시코(0.12%)와 비교해도 낮은 편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이 주식시장 중심으로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규모가 실물경제규모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은 그만큼 주식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1995년부터 연도별 신규 상장건수를 살펴본 결과 거래소의 경우 1996년에 40건으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 코스닥은 1996년 개설이후 외환위기 때 신규 상장이 주춤하다 1999년부터 벤처붐으로 급속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주가가 높았던 2000년 182건을 정점으로 벤처기업의 주가하락과 함께 점차 감소하여 2003년에는 70건을 기록하였다.
이처럼 발행시장이 위축된 이유는 기업의 투자부진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자금수요가 감소했고 자금이 필요하더라도 금융기관으로부터 저금리 차입을 통해 자금조달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벤처 거품 붕괴 이후 뚜렷한 수익모델이 없는 등록 벤처기업들의 주가 폭락을 경험한 주식시장 참가자들의 신규상장기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되었다. 한편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 또한 지난 10여년간 주가수준이 등락을 지속할 뿐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에 매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금리로 주식발행 이점 낮아져
주가지수와 주식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액을 살펴보면 주가가 상승할 때 자금 조달액도 증가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주가가 높다는 것은 향후 경기가 상승하여 투자가 증가하고 기업의 수익성이 향상될 것이라는 점을 반영하기 때문에 자금조달을 위해 주식시장에서 유상증자를 실시하거나 신규 상장하는 기업이 많아지게 된다. 1995년에 평균주가지수가 1,013포인트를 기록할 당시 1991년에서 1993년 연평균 2.4조원이었던 주식시장에서의 자금조달금액이 6조2천억원으로 증가하였으며 외환위기 이후 1999년에는 유상증자 33조원을 포함하여 전체 35조원 가량의 자금이 조달되었으나 주가가 하락한 2002년과 2003년에는 주식시장에서 자금조달이 7조원대에 그쳤는데 유상증자가 대부분이었다.
기업의 자금조달 추이를 살펴보면 1990년대 후반에는 직접금융 비중이 컸지만 2002년부터 은행이나 금융기관에서 차입한 간접금융의 비중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투자활동이 위축되면서 자금조달규모가 이전에 비해 작아졌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금리상승과 재무구조 개선 때문에 주식발행이 늘어나면서 직접금융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으나 2000년 이후 저금리 기조로 금융기관 차입금의 이자비용이 저렴해지면서 간접금융 비중이 커지게 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또하나 눈여겨 볼 부분은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상장법인의 자사주 보유금액은 2004년 5월 7일 현재 19조 1천억원으로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국내 증시 약세에 따라 기업들의 자사 주가부양을 목적으로 여유자금을 사용한 자사주 취득이 증가하였으며 스톡옵션이나 신우리사주제도를 위한 자사주 매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배당금의 추이를 보면 1995년에 1.3조원에 불과했었는데 2000년에는 3.3조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2003년에는 6.5조원으로 불과 3년동안 2배가량 증가했다. 자사주를 취득하여 보유하게 되면 유통시장에서 주식수가 줄어 단기간에 주가를 부양하는 효과는 있지만 자사주는 자본에서 차감되기 때문에 기업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킨다. 따라서 이익배당 범위 내에서 자사주를 취득해야 하고,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매수방법이 제한되고 자사주 취득관련 내용을 금융감독위원회와 거래소 등에 제출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자사주 취득은 배당과 유사한 형태로 잉여자금을 미래 투자를 위해 사내에 유보하는 대신 유통시장에서 자기주식을 매입하여 유통주식수를 줄이는 행위이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에게는 주당 이익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이는 기업이 미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대안이 없다는 신호일 수도 있으며 주주들의 배당에 대한 요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산업이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안정적인 수익이 향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에 있어서는 자사주매입이 주주들을 위해서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에 계속해서 경쟁력을 확보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연적이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 증가는 안정적인 경영을 통해 현재 이익을 많이 내려는 주주의 단기적인 이익추구 행위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주주중시 경영으로 배당이 증가하면 당장 주가가 오르는 효과가 있지만 배당은 이익의 처분행위이며 배당 후 남은 이익을 유보하여 투자재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지나친 배당은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Going Private 증가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의 자진 상장폐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주식비공개회사화(Going Private) M&A전략은 기업공개(Going Public)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제3자가 주식을 전량 매입함으로써 비공개 기업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소액주주 반발을 무마하고 경영전략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외국기업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M&A전략 중 하나다. 94년 삼나스포츠를 나이키가 99.3% 지분을 인수한 후 자진 상장폐지 한 데 이어 P&G도 쌍용제지를 인수한 뒤 99년 상장폐지했다.
또 한국안전유리, 대한알미늄, 송원칼라 등 지금까지 5개 국내기업이 외국계로 넘어간 후 자진 상장폐지했다. 코스닥 기업 중에서는 어필텔레콤, 캡스, 전진산업, 동방전자산업에 이어 지난 5월에는 케이디엠이 외국계로 인수된 후 자진 등록취소하는 등 지금까지 10개 기업이 등록취소를 선언했다. 아직까지는 외국계에 인수된 기업에게 국한된 사례이지만 주식시장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토종기업들의 자진 상장폐지가 조만간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자진 상장폐지 사례가 드물지 않다. 포천지(Fortune, 2003.5.26.)에 따르면 약품테스트기업인 Quintiles가 17억달러 상당의 상장주식을 사들여 상장폐지하였고 2002년에는 건강보조식품기업 Herbalife, 전자부품기업 CoorsTek가 상장폐지하였으며 앞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상장폐지가 증가한 이유는 무엇보다 주주, 기업분석가 등이 경영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장기적인 경영계획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기업공개나 상장기업의 공시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도 상장폐지의 중요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2004년 4월 미국 상장기업의 최고경영자 9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법률회사 Foley KCMI 자본시장연구원 & Lardner LLP의 조사에 따르면 2002년에 비해 2003년도 감사비용이 2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S&P 500에 속한 기업들은 24% 증가하였으며 중간규모의 시가총액 기업들은 18%, 소규모 시가총액 기업의 경우 20% 증가해서 시가총액이 큰 기업의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기업지배구조와 공시규정을 준수하기 위하여 관리비용이 상당수준 증가했다고 응답한 경우가 64%로 나타났으며 까다로운 공시규정 때문에 상장폐지를 원한다는 응답도 21%를 차지하였다.
아울러 저금리 기조로 인해 기업이 은행차입과 KCMI 자본시장연구원 같은 간접금융을 이용할 경우 주식발행보다 자금조달비용이 저렴하다는 점도 자진 상장폐지의 이유가 된다.
기업을 공개하게 되면 경쟁기업, 공급자, 종업원에게 경영성과가 공개되어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각각 기업과 다른 입장에서 의사결정하기 때문에 기업의 공개된 상세한 정보를 이용하여 이해관계자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하게 된다면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해가 될 수 있다.
주식시장의 긍정적 기능 살려야
지금까지 신규 상장, 유상증자 감소, 간접금융 비중 증가, 우량기업의 자진 상장폐지 등으로 자금조달과 주식소유분산 등 주식시장 본연의 기능이 최근 수년간 상당히 취약해지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주식시장의 자금조달 기능이 지금처럼 계속 악화되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미래 성장이 유망한 투자안을 보유한 기업에 자금이 흘러가지 않아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투자계획을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울러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과 자진 상장폐지 등으로 기업의 소유권이 집중된다면 경영자의 전횡 등으로 결국 기업과 경제전체의 성과와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주식시장의 경우 은행보다 경제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여 보다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유도하고 경제 성장 및 경제위기 예방에서 많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주식시장이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가지 요인들, 예를 들어 향후 경제전망, 위험 등을 즉각 반영하여 가격을 조정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소유분산을 통해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주식시장은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신성장산업의 촉진을 위해서는 주식시장의 활성화가 긴요한 것이다.
건전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주식시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기업연금제도가 정착되어 장기적인 주식시장의 수요기반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연기금 등의 주식투자비중을 높여 수요기반을 넓혀야 할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꾸준한 수익을 내야 하는 연기금의 특성상 높은 비중을 변동성이 높은 주식시장에 투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둘째, 기관투자가들이 기업분석능력을 높여 저평가된 우량기업을 가려내어 투자수익률을 높이고 주주로서 투자회사의 성과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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